
평생 일을 하던 저는 은퇴하기 전부터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그만두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게 될까?”
일을 할 때는 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고, 하루의 일정이 자연스럽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멈추는 순간 갑자기 하루가 길어지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은퇴를 맞았고,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제 하루는 생각보다 바쁩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친구들과 골프를 하고, 두 번은 헬스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요가를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매일 산책을 합니다. 러닝도 합니다.
아침부터는 오늘 무엇을 먹을지 생각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찾아보고 장을 보고 직접 식사를 준비합니다.
돌이켜보면 은퇴 전 걱정했던 “일이 없어지면 무엇을 하면서 살까?”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을까?”
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젊음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더 건강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60대는 어떨까요?
지금보다 몸은 달라지겠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건강과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은퇴 후 삶
일을 멈추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생활의 리듬,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역할, 성취감, 하루의 목적이 한꺼번에 달라지는 커다란 삶의 전환점입니다.
그래서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준비만큼이나 “은퇴 후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은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2025년 발표된 연구는 은퇴와 건강의 관계를 살펴본 15개의 체계적 문헌고찰과 4개의 메타분석을 종합했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은퇴가 건강에 항상 좋은 것도, 항상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연구마다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가 모두 나타났고, 사회경제적 상황, 이전 직업의 특성, 개인의 생활방식 등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하던 사람에게 은퇴는 몸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직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모든 일정을 잃으면 신체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은퇴라는 사건 자체보다 은퇴 후 어떤 생활을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은퇴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루에 할 일을 만들었습니다.
골프 약속을 정하고, 헬스장에 가고, 요가를 하고, 저녁에는 산책을 합니다.
골프만 해도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정해진 날에 골프장에 가고,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고, 운동이 끝난 후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이라는 신체활동에 규칙적인 일정이 더해지고, 골프에는 사회적 관계까지 더해집니다.
이런 활동들이 은퇴 후 제 하루를 자연스럽게 채워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은퇴 후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들을 검토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삶의 만족도, 사회적 지지와 활동, 신체·기능적 건강, 인지기능 등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연구의 수와 질에 한계가 있어 강한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은퇴는 일이 끝나는 시점이라기보다 하루의 구조를 새롭게 만드는 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목적
은퇴 후에도 나에게 '할 일'이 필요할까?
직장을 다닐 때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하루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은퇴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단순히 “시간이 많아졌다”가 아니라,
“이 많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삶의 목적(Purpose in Life)이라는 개념입니다.
삶의 목적은 단순히 큰 꿈이나 인생의 목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삶에 방향이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며, 앞으로도 살아갈 이유와 목표가 있다고 느끼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는 상당히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특히 올해 발표된 아주 큰 메타분석이 있습니다.
2026년 연구에서는 25개 연구, 약 48만 8천 명의 참가자와 최대 32년의 추적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삶의 목적이 높은 사람은 목적의식이 낮은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약 30% 낮은 것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생활습관과 임상적 위험요인을 고려한 후에도 연관성이 남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목적이 있으면 수명이 30% 늘어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연구는 삶의 목적과 사망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목적의식 자체가 수명을 직접 늘린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왜 이런 관계가 나타나는지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건강관리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이 반드시 직업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손주를 돌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골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나 공부, 봉사, 새로운 사업이나 취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운동과 친구들과의 시간, 그리고 매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일상도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은퇴 전에는 이런 일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 하루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필요한 것은 어쩌면 새로운 직업이 아니라,
“내가 내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건강수명
앞으로의 60대를 어떻게 더 즐겁게 살까?
그렇다면 지금부터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 생각한다면 답은 너무 막연합니다.
저는 오히려 “앞으로의 60대를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서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2026년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56개 연구를 분석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좋은 수면, 높은 신체활동, 균형 잡힌 식사가 높은 삶의 만족도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신체활동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 연구 역시 대부분 관찰연구이기 때문에 “운동하면 반드시 행복해진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 결과를 보면서 제 일상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골프를 하고 헬스를 하고 요가를 하고 산책과 러닝을 하는 것은 단순히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친구들과 약속이 생기고, 외출할 이유가 생기고, 몸을 움직이고, 하루의 일정이 만들어집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좋은 재료를 고르고, 직접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루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됩니다.
앞으로의 60대를 생각한다면 저는 이런 것들을 하나씩 더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몸을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혼자 있어도 즐거운 취미가 있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내가 먹는 음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도 기대되는 일이 있는 것.
100세 시대에는 은퇴 후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 수 있습니다.
그 긴 시간을 단순히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관리하는 시간”으로만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해외에서 은퇴 후의 하루 하루를 제가 좋아하는 활동들로 채우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동네 공원을 걷고, 누군가는 집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채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쓰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활동을 찾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건강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즐거움과 호기심, 사람과의 관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SuperLife Insight
이번 글을 쓰면서 은퇴 후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은퇴를 준비할 때는 보통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자료를 찾아보면서 한 가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은퇴 이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 긴 시간을 단순히 쉬면서 보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는 몸을 위한 계획뿐 아니라 시간을 위한 계획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운동을 계속할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혼자 있는 시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인생의 목표를 정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고 싶은 일이 하나라도 있는 삶.
그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건강수명을 준비하는 또 다른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60대를 ‘젊음을 되찾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즐거움을 계속 발견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70대가 되었을 때,
“그때 조금 더 해볼 걸”이라는 후회보다 “그때 정말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하나씩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
📚 참고자료
- Vigezzi et al. (2025), Impact of retirement transition on health, well-being and health behaviours — 은퇴 관련 15개 체계적 문헌고찰과 4개 메타분석 종합
- Heaven et al. (2013), Supporting Well-Being in Retirement through Meaningful Social Roles — 은퇴 후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 Sutin et al. (2026), Purpose in life and mortality — 25개 표본, 488,765명, 최대 32년 추적
- Alumona et al. (2026), Association between life satisfaction and health behaviours among older adults — 22개국 56개 연구